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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소 alookso] 후쿠시마 핵오염수 문제, 글로벌 위기 관리의 n번째 무정부 상태
  • 글쓴이 포용과 혁신
  • 작성일 2023-06-29 20:37:05
  • 조회수 77
주병기(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n번째 글로벌 위기
출처: BBC 뉴스
과학이 어떤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가 있고 어떤 위험이 존재한다고 말할 때가 있다. 전자의 경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그 “과학의 틀로 본 세상에서”라는 대전제다. 과학의 틀로 보이지 않는 세상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과학이 아니다. 그래서 과학의 옷을 입고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할 때는 겸손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도 생명, 지구환경, 그리고 지구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것처럼 중대한 위험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광대하고 복잡한 자연을 보는 과학의 창은 너무나 협소하다. 기후 위기, 오존층 위기, 생물다양성 위기, 해양 플라스틱 오염 등 인간의 탐욕과 오만한 과학기술이 반복적으로 일으키는 중대 글로벌 위기들이 이를 말해준다. 모두 ‘이 정도는 위험하지 않아’라고 속삭이는 과학을 과신하여 발생했던 위기다. 인류의 진보에 있어서 과학만큼 중요한 것은 이런 과학과 이기적 경제 활동이 만들어낼 수 있는 예기치 못한 위험을 관리하고 중대 위기를 사전에 방지하는 제도일 것이다. 대부분의 글로벌 위기는 이런 제도의 부재가 만든 무정부 상태에서 일어난다. 원자력 발전과 핵무기 등 원자력의 경제적 혹은 군사적 활용으로 발생하는 핵폐기물, 핵사고, 핵전쟁과 핵공포의 글로벌 위험 관리 문제도 마찬가지다. 해양 생태계와 지구적 생명 안전의 중대 위기로 키우지 않으려면 글로벌 무정부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IAEA와 NPT가 대변하는 글로벌 패권과 돈의 질서로 무정부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 정글의 질서가 지배한다면 다시 n번째 글로벌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다행히도 호모 사피엔스의 본성에는 탐욕과 오만이 만드는 위기를 경계하는 도덕과 겸손이 내재해 있다.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을 피하려고 하는 본성이 그런 겸손의 시작점이다. 불확실성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복권이나 도박과 같이 가능한 결과들이 알려지고, 어떤 결과가 얼마의 확률로 일어난다는 것도 알려진 불확실성이다. 다른 하나는 어떤 결과, 사태가 벌어질까 알 수 없거나 알려진 여러 사태의 확률도 알 수 없는 ‘깊은’ 불확실성이다. 이런 깊은 불확실성 속에서 인간의 행동은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 피해와 충격을 최소화하는 불확실성 기피성(uncertainty aversion)이란 특성을 나타낸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화석연료 위에 세워진 거대 자본과 권력 그리고 일부 과학 기술자들이 기후 위기를 괴담이라 몰아붙였다. 그 거대한 돈의 위력을 무너뜨렸던 것도 바로 이 겸손한 인간 본성,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성과 정치참여였다. 기후 위기가 지구를 금성 같은 지옥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무시무시한 사태에서 (지구 생태계가 아주 오래전에도 있었던 온난화를 이겨냈듯이) 인간의 기술로 온난화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사태에 이르기까지 인지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사태의 스펙트럼이 있다. 수많은 사태 그리고 각각의 가능성에 대해 무지한 깊은 불확실성을 피하는 방법은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 가장 엄격히 규제하는 것이다. 바로 화석연료 사용 중단이라는 결정이다. 아직도 일각에서는 유엔기후변화기본협약(UNFCCC)와 그에 기반한 국제사회의 기후 거버넌스를 반대하지만 인간의 도덕적 본성의 저력을 이길 수 없다. 이것이 자연과학의 열역학 법칙과 같이 인류의 역사를 지배하는 법칙이라 믿는다.
   
정의로운 사회계약을 이끌어 내는 힘, 불확실성 기피성
2000년대 유럽과 북미를 휩쓸었던 광우병 사태에도 깊은 불확실성의 교훈이 남아있다. 비윤리적이고 폭력적인 가축 사육, 이 야만적 관습이 만들어낸 전혀 예기치 못한 결과라는 것이 밝혀졌다. 과학적 축산기술과 탐욕이 만들어낸 깊은 불확실성이 겸손한 본성을 깨웠고 정의감을 폭발시켰다. 광우병 사태를 발단으로 소고기뿐만 아니라 공장식 축산 전반에 대한 반성 그리고 동물복지에 대한 시민들의 자각과 행동 그리고 야만적 관습을 철폐하는 개혁의 첫걸음이란 역사적 진보가 이루어졌다. 이명박 정부의 무책임한 미국산 소고기 수입 결정에 거세게 저항했던 시민운동을 광우병 “괴담”을 이용한 비과학적(?) 선동 때문이라고 비난하는 저열한 논쟁이 아직도 이어진다. 소 사육과 소고기 유통 전 과정에서 광우병 피해를 막는 새로운 법과 규제가 도입되면서 광우병 확산은 멈췄다. 시민저항에 떠밀려 한국 정부 역시 광우병 확산 위험을 줄이는 규제를 도입했다. 괴담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기피하는 시민들의 의지가 전 세계적으로 만들어낸 인간 진보였다.
애덤 스미스의 도덕철학은 인간에 내재한 공평한 관찰자의 본성에서 출발한다.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공평하게 느끼고 만족하고 괴로워하는 공감 능력이 선한 질서가 지배하는 사회를 만드는 단초가 된다. 정의로운 규범이 지배하고 인혜(benevolence)와 현려(prudence)의 덕이 조화를 이루는 선한 질서 속에서 “보이지 않는 손”의 시장경제가 작동한다. 지금의 글로벌 자본주의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공평한 관찰자의 겸손한 본성, 불확실성 기피성이 정치철학자 존 롤즈가 말했던 정의로운 사회계약을 이끌어 내는 힘이다. 공평한 관찰자가 국적, 인종, 종교, 사회적 지위를 막론하고 타인과 공감하여 이루어지는 협의만이 정의로운 사회계약이라 할 수 있다. 공평한 관찰자는 이렇게 1인-1표의 원칙을 존중하고 돈, 권력과 패권의 힘을 기각한다. 이처럼 정의로운 사회계약이 부재한 것이 지금까지 탐욕과 과학의 오만이 만들어낸 글로벌 위기들을 사전에 막지 못했던 이유다. 교토의정서, 파리협약에 이어 지금 인류는 글로벌 기후 거버넌스라는 정의로운 사회계약의 합의점을 찾고 있는 중이다. 눈 먼 탐욕의 21세기 글로벌 자본주의가 초래한 다른 위기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정의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하다.
   
과학의 옷을 입고 난무하는 “무위험론”에 대한 경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해 한국, 중국, 대만, 호주와 뉴질랜드를 포함한 태평양 도서국 등을 중심으로 논란이 있다. 태평양에 접하지 않은 독일 정부도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바 있다. 마땅히 그래야 하는 문제다. 원자력 발전 사고와 핵 방사능 오염의 문제가 이웃 나라, 전 세계, 미래 세대와 지구 생태계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태로 전개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원자력 안전의 문제야말로 그 불확실성이 초래할 위기의 양태와 확률을 가늠하기 어려운 깊은 불확실성의 문제다. 섣부른 과학적 판단으로 성급한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이를 계기로 공평한 관찰자의 관점에서 정의로운 사회계약에 의한 원자력 안전의 글로벌 거버넌스를 만드는 길을 열어야 한다. 과학의 옷을 입고 난무하는 “무위험론”은 나쁜 관습이 고착화되는 데 일조하고 있다. 핵폐기물 위험을 당사국 영토안에서 내부화할 수 있음에도 외부화하기 때문에 누구도 책임을 회피하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 이런 나쁜 관습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돌이킬 수 없는 중대 위기로의 길이 열리게 된다. 지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역시 과거 미국, 러시아 등 핵오염-범죄국들이 자행했던 나쁜 관습으로 고착화된 도덕적 해이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앞으로 원자력 발전의 양적 확대는 불가피하다. 그래서 나쁜 관습이 야기하는 깊은 불확실성의 그늘도 더 짙다. 지금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와 한 몸 같은 반국가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사회의 연대와 협력을 통해 원자력 안전의 정의로운 글로벌 거버넌스의 길을 열어야 한다. 전 세계 시민들의 도덕적 본성, 그들에게 내재한 공평한 관찰자의 겸손한 본성을 깨우는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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