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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소 alookso] 생성형 AI 시대 인류 선언
  • 글쓴이 포용과 혁신
  • 작성일 2023-06-29 20:36:22
  • 조회수 75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출처: 로이터 통신

“하나의 유령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챗GPT라는 유령이”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AI는 시장의 흐름을 통째로 바꾸거나 판도를 뒤집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 수준을 넘어, 근대 이후 성립한 문명의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헨리A. 키신저, 에릭 슈밋, 대니얼 허튼 로커가 공동 집필한 『AI이후의 세계』에서 챗GPT는 인쇄술 발명 이래 흔들린 적 없는 인간의 인지 과정을 바꾸는 지적 혁명을 일으키는 신기술이라고 했다. 중국이나 이슬람 세계보다 후진적이었던 유럽은 15세기를 기점으로 역사학에서 ‘대 분기(the great divergence)’라고 지칭하는 대역전극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럴 수 있었던 요인들 가운데 빠짐없이 거론되는 것이 구텐베르크에 의한 인쇄술의 혁신이다. 
생명체의 “to be or not to be”를 결정하는 심판관은 자연이다. 생존하여 자손을 번식시키기 위해서는 자연에 적응해야 한다. 그런데 생명체 가운데 유일하게 인간만이 욕구를 최대한 충족시킬 목적으로 자연을 길들이는 문화적 진화의 길을 열어서 지구상의 최상위 포식자로 등극했다. 자연선택과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통한 생물학적 진화가 일어나려면 지질학적 시간이 걸리지만, 집단기억과 집단학습으로 이뤄지는 문화적 진화는 역사적 시간 속에서 전개된다. 인간이 타자와 소통하고 정보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언어를 사용할 줄 알게 된 것이 문화적 진화의 존재 방식을 지향하는 결정적 계기다. 인간은 언어를 코드로 해서 문화유전자인 밈(meme)을 만들어냈다. 
   
언어는 무한한 사용을 위한 유한한 수단
밈을 복제하는 방식의 획기적 변화는 문자의 발명으로 일어났다. 말은 표출됨과 동시에 사라지지만, 문자는 시간을 초월해서 공간적 확장을 할 수 있는 밈을 생성했다. 그와 함께 헬름 폰 홈볼트(Wilhelm von Humboldt)가 “언어는 무한한 사용을 위한 유한한 수단”이라고 했듯이, 인간은 한정된 숫자의 자음과 모음을 문법에 맞게 결합한 문자의 조합으로 수행하는 글쓰기로 허구 세계를 창조해 무한대 상상력을 펼치는 자유를 얻었다. 문자 기록의 집합체로 필사본이란 책이 탄생하고, 그것을 매체로 해서 인류는 사상의 자식을 낳는 지성사의 계보를 창출했다. 소크라테스의 생각은 플라톤에 의해 책으로 기록됨으로써 서구 지적 전통의 원류가 형성됐다. 
필사본에 의한 밈의 복제는 한정된 숫자의 책으로 제한을 받는다.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해준 것이 문자나 그림을 일정한 판면(版面)에 잉크를 묻힌 뒤 종이 등의 재료에 찍어 반복적으로 베끼는 기술인 인쇄술의 발명이다. 인쇄 방식은 크게 나무판에 글자를 음각이나 양각으로 새긴 후 잉크를 묻혀 종이에 찍어내는 목판과 활자를 하나하나 따로 만든 뒤 그것들을 조합해 문서를 찍어내는 활판의 둘로 나뉜다. 둘 다는 동아시아에서 발명됐다. 하지만 전자에서 후자로 인쇄술의 패러다임 전환은 1445년 독일의 인쇄업자 구텐베르크가 납으로 활자를 주조하고 포도주나 올리브유를 만들 때 사용하는 압착기를 응용해 인쇄를 하는 기술혁신을 통해 일어났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없었다면, 1492년 콜럼버스의 항해나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은 일어나지 않았다. 가난한 직조공의 아들로 태어나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콜럼버스가 대서양 횡단에 필요한 지리와 항해에 관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던 것은 인쇄술 확산으로 출판된 책으로 독학을 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콜럼버스의 항해가 유럽이 주도하는 세계화의 기점이라면, 근대를 향한 정신 혁명의 단초를 이루는 대사건은 루터의 종교개혁이다. 1521년 보름스 의회에서 이단 판결을 받은 루터는 작센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의 비호로 바르트부르크 성으로 피신해 독방에서 신약성서 독일어 번역에 착수했다. 단 11주 만에 번역을 끝낸 원고는 빠르게 인쇄돼 1522년 9월 말 라이프찌히 도서박람회에 출품됐다. 루터의 성경은 나오자마자 완판되고 일 년이 채 되지 않아 12판이 출간되고 해적판도 50개가 넘었다. 그의 책은 생전에 50만 부가 팔린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 광부의 아들인 루터는 성경을 교회에서 강론하는 신부의 언어가 아니라 길거리나 시장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로 번역했다. 그의 성경은 종교개혁의 문화유전자를 퍼뜨려서 전 유럽에 엄청난 정신적 자식을 낳았다. 글쓰기는 추상적인 생각을 문자로 물질화 한다면, 책을 그것을 상품화해서 지식을 빠르게 그리고 멀리 전파했다. 인쇄라는 기계적 복사 기술은 문화적 진화를 위한 밈의 복제에 돌연변이를 일으켰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그가 의도했던 목표와는 다르게 중세질서를 무너뜨리는 종말론을 태동시켰다. 그의 생각이 농민들에게 복제될 때 변형이 일어나 그가 원하지 않는 사상의 자식들이 태어나 농민반란이 들불처럼 번졌다. 루터는 그런 농민들을 자신과 무관한 강도와 살인자라고 비난했지만, 그가 낳은 정신적 ‘사생아’임은 분명하다.
   
인쇄술은 복사하고, 챗GPT는 훔친다   
마셜 맥루한(Marshall McLuhan)은 “미디어는 메시지다(The medium is the message).”라고 했다. 책은 단순히 밈을 담아 전달하는 그릇이 아니라, 복제 과정에서 마사지(massage)로 변이가 일어난다. 근대는 그야말로 “인간은 책을 만들고, 책은 인간을 만든다.”로 성립한 문명이다. 책의 저자는 어디까지나 인간이고, 책은 저자의 원고를 대량 복사한 상품으로 존재한다. 인쇄기는 인간이 쓴 원고를 책으로 대량 복사하는 기계다. 반면 챗GPT는 인간이 생산한 여러 지식을 ‘훔쳐서’ 문장을 생성한다. 스티브 잡스가 즐겨 인용한 피카소가 했다는 명언이 “좋은 예술가는 복사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good artists copy, great artists steal).”이다. 인쇄술이 좋은 예술가라면, 생성형 AI는 훌륭한 예술가 수준이다. 챗GPT는 텍스트를 생성할 뿐만 아니라 인생의 질문에도 답을 하는 책의 공동 저자로도 등장했다. 『챗GPT 인생의 질문에 답하다』의 인간 저자인 이안 토마스(Iain S. Thomas)와 재스민 왕(Jasmine Wang)은 서문에서 그것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인공지능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도둑이다. 인류가 남긴 위대한 저작을 모두 읽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을 모두 읽었으며 또한 모든 종교 문헌 및 각기 다른 역사적 해석까지도 모두 읽었다. 또한, 인류의 가장 위대한 노래와 시도 모두 알고 있다. 인공지능이 현대 지식 노동자 중 일정 부분을 대체할 수 있음을 우리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생성형 AI가 대도(大盜)로 등장한 이후 모든 영역의 인간 지적 활동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발명된 이후 생성된 디지털 데이터가 문자의 발명 이후 인류가 생산한 모든 아날로그 데이터의 양을 추월하는 역전이 2002년쯤 일어났고, 이젠 둘 사이 격차를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전 세계에서 생성형 AI를 사용하는 인구는 점점 더 늘어날 것이고, 이대로 가면 인간이 생산한 텍스트의 총량을 넘어서는 것은 시간 문제가 될 것이다. 실제로 챗GPT에게 그 시점이 언제쯤이 될지를 물어봤다. 답이 걸작이다. AI가 생성하는 디지털 콘텐츠의 양이 인간이 생성하는 것을 능가하는 시점을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데, 그 이유는 AI 기술의 발전, 데이터 사용에 대한 규제, 그리고 사람들이 AI 생성 콘텐츠를 어떻게 수용하고 사용하는지 등의 다양한 요인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AI의 생성 능력은 학습 데이터의 범위와 질에 크게 의존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나 통찰력을 제공하는 능력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인간이 생성한 문장과 동일한 가치를 지니지는 못한다는 ‘위로’의 말까지 덧붙였다. 하지만 과연 안심할 수 있을까? 
   
피할 수 없는 ‘인공지능 운명론(AI fatalism)’   
AI 대부이자 딥 러닝 개념을 고안한 제프리 힌튼(Geoffrey Hinton)은 AI의 위험성을 자유롭게 말하기 위해 구글을 떠났고, 오픈 AI CEO인 샘 올트먼(Sam Altman)조차 미국 의회에서 처음 열린 AI 청문회에서 인공지능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선 정부의 규제와 개입 그리고 국제표준과 국제적인 안전 감시 체계와 공동대응을 위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같은 국제기구가 필요하다고 증언했다. 노암 촘스키(Noam Chomsk)는 챗GPT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가 『픽션들』에서 말한 세상의 모든 정보를 소장한 ‘바벨의 도서관’과 같은 것이라 했다. 정보란 어떤 시스템이나 상황에 대한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곧 선택의 리스크(risk)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보를 갖고 인간이 세상에 개입할수록 ‘나비 효과’가 일어나서 불확실성은 더 커지는 역설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생성형 AI 이후 세상의 불확실성은 제거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증폭된다. 키신저는 AI가 이룩한 시간압축을 인간이 못 따라가서 발생하는 인류 멸망의 위기를 핵전쟁 발발로 설명했다. 만약 북한이 핵 공격을 도발하면 미국은 즉각 탐지해 미사일을 발사하고, 중국은 국경 폐쇄를 결정한다. 그러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0.003초라고 한다. 인류는 점점 인공지능에게 운명을 맡겨야 하는 ‘인공지능 운명론(AI fatalism)’을 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과연 인공지능은 인류가 만든 최고이자 마지막 발명품이 될 것인가? 챗GPT의 등장과 함께 닉 보스트롬(Nick Bostrom)이 말하는 인공지능 개발의 기본 값(default value) 설정이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떠올랐다. 
   
“전 세계 인류는 단결하라.”   
생성형 AI를 통해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빅데이터가 생산될 것이지만, 그것들은 기본적으로 ‘확률론적 앵무새’로부터 나온 것이기에 새로운 정보는 없다. 우주에는 우리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있는데, 생성형 AI는 모른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 학문은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으로 성립한다. 그러기에 챗GPT는 학문을 할 수 없다. 앎과 모름의 정보는 인간의 관측을 통해 구성된다. 그에 관한 유명한 사례가 ‘슈뢰딩거 고양이’다. 우주라는 상자 속의 ‘슈뢰딩거 고양이’의 생사(生死)에 관한 정보를 알기 위해 학문하는 주체는 인간이다. 생성형 AI가 써주는 모든 정보는 우주 속의 수많은 상자 속의 ‘슈뢰딩거 고양이’에 관해 이미 알고 있는 것들뿐이다. 생성형 AI 시대 인류는 역사상 한 번도 가지 않은 문명의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 인공지능은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으로 유용하지만, 아직 운전대는 우리가 잡고 있다. 헤겔이 말하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일어나기 전에 우리는 각성해야 한다. “전 세계 인류는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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