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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소 alookso] 한국사회, ‘최초의 질문들‘을 위하여
  • 글쓴이 포용과 혁신
  • 작성일 2023-06-29 20:32:13
  • 조회수 67
류영재((주)서스틴베스트 대표이사)
서스틴베스트 류영대 대표이사
 미국 굴지의 기업들에서 인도인 CEO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를 성공적으로 턴어라운드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사티아 나델라(Satya N. Nadella)’를 위시해서 구글(Google)의 ‘순다르 피차이(Sundar Pichai)’, 아이비엠(IBM)의 ‘아르빈드 크리슈나(Arvind Krishina)’, 어도비(Adobe)의 ‘샨타누 나라옌(Shantanu Narayen)’ 등이 그들이다. 이들 모두 인도에서 대학 졸업 후 직장을 찾아 미국으로 이주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글로벌 인재들을 배출한 인도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런 의문을 갖던 중 최근 시청한 한 공영방송의 한 다큐 프로그램에서 그 궁금증을 어느 정도 풀 수 있었다. 인도에는 인도공과대학(Indian Institute of Technology, IIT)이 있다. 이 대학은 인도의 수학, 화학, 물리 천재들이 모이는 대학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입학 경쟁률도 치열하다. 2020년의 경우 인도 전역에서 약 80만 명이 지원하여 0.5%인 4,000명만이 합격하였으니, 가히 낙타가 바늘 귀 들어가는 것에 비견될 수 있다. 인도에서는 “IIT 낙방하면 MIT나 스탠포드에나 가면 된다”는 말도 있다고 하니, 가히 그 수준과 그들의 자부심 정도를 알 수 있다. 
   
IIT에는 인도 전역에 위치한 스물 세군데 캠퍼스에 1만 6천명의 재학생들이 있고 이들 모두는 기숙사 생활을 한다. 재학생들은 새벽 3,4시에 취침하는 것이 다반사라고 한다. IIT를 졸업하기만 하면 글로벌 유수의 기업들을 선택해서 갈 수 있다고 하니, 신분적 위계가 명확한 인도 사회에서는 IIT 입학과 졸업이 유리천정을 뚫고 상단까지 진출할 수 있는 효과적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아닐 수 없다. 역설적으로 인도사회에서의 신분적 제약이 성공을 향한 강력한 동기부여의 기제로 작동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것이 ‘인도인 CEO 상종가 현상’을 충분히 설명해 주진 않는다.

그러나 궁금증은 IIT의 커리큘럼과 수업방식을 접하면서 어느 정도 풀렸다. 즉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을 독려하는 독특한 수업방식이다. 우선 IIT의 커리큘럼은 철저히 실용적이다. 따라서 매년 산업, 필드, 시장, 기업의 트렌드 변화에 맞게 새로운 과목들이 설강(設講)된다. 둘째, 수업방식도 주입식이 아닌 토론식이었다. 강의실에서는 항상 학생들이 질문하고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여 서로 협력적으로 제기된 문제들을 풀어 나간다. 학생들의 성적은 ‘얼마나 중요하고 많은 질문을 했느냐’에 따라 매겨진다. 이 프로를 시청하다 보니 히브리어로 뻔뻔함, 철면피, 무례함을 뜻하는 이스라엘의 ‘후츠파’Chutzpah)도 떠올랐다. 선생과 학생 간 무례할 정도의 난상토론이 벌어지는 이스라엘의 교실 모습이 그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이스라엘을 ‘혁신국가’, ‘창업국가’로 만든 원동력 중 하나라는 평가도 있다. 셋째,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스타트업 창업을 독려하고, 아울러 창업으로 연결될 수 있는 사업 아이디어를 높이 평가해 준다. 
   
역시 같은 다큐 프로인 ‘최초의 질문’도 시청했다. 서울대 이정동 교수와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의 대담으로 이뤄진 이 프로에서도 깊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다. 요약하자면, 우리 경제가 과거의 ‘추격경제’ 시대를 끝내고, ‘선도경제’로 나가기 위해서는 ‘이제껏 제기되지 않았던 최초의 질문’을 독려, 존중하는 방식으로 대전환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최초의 질문’이란 기존 교과서 등에 나와 있지 않거나 혹은 교과서에 실려 있는 이론들에 대해 챌린징(challenging)하는 질문들을 말한다. 예컨대 16세기 초 코페르니쿠스의 “지구가 과연 우주의 중심인가?”, 17세기 아이작 뉴턴이 “왜 사과가 떨어지나?” 20세기 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제기했던 “시간은 모두에게 같은 속도로 흐르나?”, 21세기 초 미 국방부 산하 고등연구계획국(DARPA)에서 던졌던 “왜 자동차는 스스로 달릴 수 없나?” 등이 세상을 바꿔 놨던 최초의 질문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결론부터 말하면, ‘최초의 질문’은 언감생심이고, ‘노우 퀘스천(No Questions)'이 우리의 실상이자 현주소다. 즉 질문보다 받아쓰기가, 문제 제기보다는 암기가 더 평가받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닐까 싶다. 2010년 11월 우리나라 기자들을 부끄럽게 했던 사건이 하나 있었다. 당시 G20 개최국이었던 국내에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오바마는 주최측인 한국을 배려해 한국 기자들에게 먼저 질문 기회를 주었다. 그런데 몇 분이 흘러도 정적만 흘렀다. 그러자 중국 기자가 벌떡 일어나 자신은 한국 기자는 아니지만 아시아를 대표해 질문하겠다고 했다. 무례한 듯 보였다. 하지만 오바마는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의 우선권이 있다고 거절했다. 그러고도 또 몇 분이 흘렀지만 한국 기자들 누구도 질문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는지도 모른다. 결국 그 중국 기자가 질문 기회를 얻었다.
   
영국 비즈니즈 스쿨 재학 시절, 어느 교수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즉 아시아 학생들 중 인도 중국 학생들은 질문이 너무 많아 강의실을 지배해서(dominate) 걱정이고, 반면 한국과 일본 학생들은 너무 말이 없어 걱정이란다. 그 교수의 말이 떠오를 때마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과 ‘한국의 잃어버릴지 모를 미래 30년’이 오버랩되어 모골이 송연해지곤 한다. 어쩌면 90년대 초반, 추격 경제를 완료한 일본이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쇠락한 배경에는 이런 ‘질문 없는 사회의 문제점들’이 깔려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 때문이다. 
   
새로운 패러다임, 새로운 로드맵과 새로운 혁신은 ‘최초의 질문’과 ‘최초의 문제의식’으로부터 나온다. 인류의 역사는 곧 질문과 의심의 역사와 다름 아니다. 다수설 혹은 통설에 대한 소수의 격렬한 도전으로부터 인류는 진보해 왔다. 그것은 기존에 정립된 이론이나 교과서가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삐딱한 자세와 태도에서 나온다. 어찌 보면 그러한 태도는 전문가가 아닌 비전문가의 시각에서 잉태되기도 한다. 로켓 전문가가 아닌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왜 1단계 로켓은 발사후 버려져야 하나? 다시 돌아오게 해서 재사용할 수 없는가?”라는 비전문가적 문제의식에서 스페이스엑스(SpaceX)는 분리된 1단계 로켓의 재착륙 기술 개발에 도전했고, 결국 성공했다. 폴라로이드(Polaroid) 카메라를 발명한 에드윈 랜드(Edwin Land)박사도 가족들과의 휴가 중 3살된 딸이 던진 도발적인 질문에서 출발했다. “아빠, 왜 지금 즉시 사진을 볼 수 없나요?”
   
그렇다면 대한민국을 어떻게 ‘질문하는 사회’를 넘어, ‘최초의 질문 사회’로 만들 수 있을까? 나는 리더와 선생들의 환골탈태가 일어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고 본다. 즉 기업에서는 리더들부터, 학교에서는 선생들부터 확 바뀌어야 한다. 질문하지 않는 학생들은 질문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리더나 선생 밑에서 길러진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해외 사례나 찾아오라는 리더가 있는 직장에서 최초의 질문은 결코 나올 수 없다. 상하간, 선생과 제자간 계급장부터 떼야 한다. 그리고 생뚱맞고, 봉창 두드리는 모난 질문들과 의견들을 포용하고 경청하는 데서부터 질문의 맹아는 서서히 싹트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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